임신과 중절을 욕망하는 중증장애인…비장애 중심사회 도발하는 연극 ‘헌치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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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인 댓글 조회 4회 작성일 25-06-06 20:03본문
“성장기에 미처 자라지 못한 근육으로 인해 심폐기능도 정상치의 산소 포화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고 … 길바닥을 내 발로 걷지 못한지도 이제 곧 30년째가 된다 … 오른쪽 폐를 짓누르는 모양새로 극심하게 휘어진 S자 등뼈가 세계의 오른편과 왼편에 독특한 의미를 부여한다.”
연습실 복판에 의료용 침대가 놓이고, 그 주변에서 배우들이 평문으로 이어지는 묘한 대사를 읊었다. 침대에는 한 명이 앉았고, 침대 옆에도 휠체어에 앉은 또다른 배우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샤카’. 비장애 중심 사회에 대해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한 동명의 소설을 무대로 올리는 연극 <헌치백>의 주인공들이다.
지난 2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만난 샤카 역의 황은후·차윤슬 배우는 “<헌치백>은 배우들이 바라본 샤카의 조각들이 샤카라는 인물을 구성하고, 관객들은 조각들이 모인 거울에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연극의 원작은 희귀 근육질환인 선천성 근세관성 근병증을 앓아온 작가 이치카와 사오가 썼는데, 동일한 장애를 지닌 40대 여성 이자와 ‘샤카(釋華)’가 주인공이다. 인공호흡기와 전동휠체어에 의지해 사는 그는 온라인 필명 ‘샤카(紗花)’로 노골적인 성적 묘사를 담은 소설을 연재하며, 비장애인 여성처럼 임신과 중절이 가능한 몸을 열망한다는 내용으로 화제를 모았다. 2023년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작가 자신의 장애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당사자성’을 고려해 연극에선 소설의 문장을 변형하지 않고 서술형 문장 그대로 무대 위에 올린다. 1인칭 시점에서 쓰여진 샤카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비장애인 황은후, 장애가 있는 차윤슬 두 배우가 한 무대에 같은 배역으로 동시에 오른다는 점도 눈에 띈다.
“샤카는 진흙탕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정결한 면과 더러운 면을 함께 가지고 있고, 이야기도 어떤 경계를 무너트리는 내용이에요. 두 샤카가 고정된 역할을 맡는게 아니라 친구처럼 대화를 하고, 한 명이 발화를 하면 옆에서 그 속마음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다른 배우들 역시 샤카에 대해 서술하죠. 이를 보는 관객들은 저마다의 샤카를 상상하며 채워가게 될 것 같습니다.”(황은후)
샤카가 품는 욕망은 비장애인의 시각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작품은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를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라 과거 장애인에게 강요된 임신 중절과 같은 차별적 맥락을 엮어내어 사회와 제도,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한다. “제 대사 중에 ‘살기 위해 파괴되고 살아낸 시간의 증거로서 파괴되어 간다’라는 말이 있어요. 샤카도 ‘바깥에서 마찰을 경험해보고 싶다, 마찰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고 열망한 것 아닐까 나름의 해석을 해봤습니다.”(차윤슬)
소설 <헌치백>은 기존 사회적 관념에 균열을 내는 통렬한 서술로도 주목받았다. 샤카의 ‘종이책에 대한 증오’가 대표적이다. 독서라는 좋은 취미도 ‘눈이 보이고, 책을 들 수 있고, 책장을 넘길 수 있고, 자세를 유지할 수 있고, 서점에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야’ 가능한데, 그러한 ‘특권성’에 무지한 비장애인의 오만함을 냉소하는 것이다. “제가 어떤 지점에선 약자, 소수자의 위치에 있게 될 수 있는데 그러한 ‘교차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작품을 하면서 ‘공감’을 넘어 ‘관점 이동’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관객들도 샤카라는 인물을 이해해가면서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되셨으면 좋겠어요.”(황은후)
저신장 장애가 있는 차윤슬은 한 발 더 나아가 장애에 대한 일반화도 지적한다. “저한테는 샤카의 독서 얘기가 어색했어요. 장애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도 각자가 다르거든요. 장애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보니 경우의 수가 많은 거죠. 저도 작품을 하면서 다른 장애, 다른 사람에 대해 알아가고 있습니다.”
차윤슬은 공연 문화의 비장애 중심주의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커튼콜 때 박수치면서 일어나면 저처럼 휠체어 타는 사람은 앞사람 엉덩이만 보게 돼요. 감명 받은 마음은 알지만 장애인 만이 아니라 키가 작은 사람, 노인, 어린이도 있잖아요. 앉아서 환호할 순 없는 건지, 함께 즐길 방법을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이번 <헌치백> 부터라도 ‘앉아서 박수치기’ 캠페인을 해봐야 할까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6월12~15일.
연습실 복판에 의료용 침대가 놓이고, 그 주변에서 배우들이 평문으로 이어지는 묘한 대사를 읊었다. 침대에는 한 명이 앉았고, 침대 옆에도 휠체어에 앉은 또다른 배우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샤카’. 비장애 중심 사회에 대해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한 동명의 소설을 무대로 올리는 연극 <헌치백>의 주인공들이다.
지난 2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만난 샤카 역의 황은후·차윤슬 배우는 “<헌치백>은 배우들이 바라본 샤카의 조각들이 샤카라는 인물을 구성하고, 관객들은 조각들이 모인 거울에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연극의 원작은 희귀 근육질환인 선천성 근세관성 근병증을 앓아온 작가 이치카와 사오가 썼는데, 동일한 장애를 지닌 40대 여성 이자와 ‘샤카(釋華)’가 주인공이다. 인공호흡기와 전동휠체어에 의지해 사는 그는 온라인 필명 ‘샤카(紗花)’로 노골적인 성적 묘사를 담은 소설을 연재하며, 비장애인 여성처럼 임신과 중절이 가능한 몸을 열망한다는 내용으로 화제를 모았다. 2023년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작가 자신의 장애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당사자성’을 고려해 연극에선 소설의 문장을 변형하지 않고 서술형 문장 그대로 무대 위에 올린다. 1인칭 시점에서 쓰여진 샤카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비장애인 황은후, 장애가 있는 차윤슬 두 배우가 한 무대에 같은 배역으로 동시에 오른다는 점도 눈에 띈다.
“샤카는 진흙탕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정결한 면과 더러운 면을 함께 가지고 있고, 이야기도 어떤 경계를 무너트리는 내용이에요. 두 샤카가 고정된 역할을 맡는게 아니라 친구처럼 대화를 하고, 한 명이 발화를 하면 옆에서 그 속마음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다른 배우들 역시 샤카에 대해 서술하죠. 이를 보는 관객들은 저마다의 샤카를 상상하며 채워가게 될 것 같습니다.”(황은후)
샤카가 품는 욕망은 비장애인의 시각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작품은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를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라 과거 장애인에게 강요된 임신 중절과 같은 차별적 맥락을 엮어내어 사회와 제도,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한다. “제 대사 중에 ‘살기 위해 파괴되고 살아낸 시간의 증거로서 파괴되어 간다’라는 말이 있어요. 샤카도 ‘바깥에서 마찰을 경험해보고 싶다, 마찰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고 열망한 것 아닐까 나름의 해석을 해봤습니다.”(차윤슬)
소설 <헌치백>은 기존 사회적 관념에 균열을 내는 통렬한 서술로도 주목받았다. 샤카의 ‘종이책에 대한 증오’가 대표적이다. 독서라는 좋은 취미도 ‘눈이 보이고, 책을 들 수 있고, 책장을 넘길 수 있고, 자세를 유지할 수 있고, 서점에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야’ 가능한데, 그러한 ‘특권성’에 무지한 비장애인의 오만함을 냉소하는 것이다. “제가 어떤 지점에선 약자, 소수자의 위치에 있게 될 수 있는데 그러한 ‘교차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작품을 하면서 ‘공감’을 넘어 ‘관점 이동’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관객들도 샤카라는 인물을 이해해가면서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되셨으면 좋겠어요.”(황은후)
저신장 장애가 있는 차윤슬은 한 발 더 나아가 장애에 대한 일반화도 지적한다. “저한테는 샤카의 독서 얘기가 어색했어요. 장애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도 각자가 다르거든요. 장애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보니 경우의 수가 많은 거죠. 저도 작품을 하면서 다른 장애, 다른 사람에 대해 알아가고 있습니다.”
차윤슬은 공연 문화의 비장애 중심주의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커튼콜 때 박수치면서 일어나면 저처럼 휠체어 타는 사람은 앞사람 엉덩이만 보게 돼요. 감명 받은 마음은 알지만 장애인 만이 아니라 키가 작은 사람, 노인, 어린이도 있잖아요. 앉아서 환호할 순 없는 건지, 함께 즐길 방법을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이번 <헌치백> 부터라도 ‘앉아서 박수치기’ 캠페인을 해봐야 할까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6월12~15일.